험난했던 한국 축구 4강 도전사

험난했던 한국 축구 4강 도전사

입력 2012-08-04 00:00
업데이트 2012-08-05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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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첫 도전 이후 64년 만에 ‘기적의 4강’

7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역사를 써 내린 홍명보호가 ‘약속의 땅’ 영국 런던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4강 진출에 성공하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한국 축구의 올림픽 도전사는 1948년 런던 대회부터 시작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한 직후 처음 나선 이 대회에서 한국은 첫 경기에서 멕시코를 5-3으로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8강에 올랐지만 곧바로 스웨덴에 0-12로 대패해 탈락했다.

당시엔 조별리그 없이 한 경기만 이기면 8강에 오를 때라 지금의 올림픽 본선 방식과 비교하기에는 무리다.

지역 예선이 처음 도입된 1956년 멜버른 대회와 1960년 로마 대회 예선에선 연달아 탈락했다.

16년 만에 다시 나선 1964년 도쿄 대회 본선에선 3연패를 당하는 동안 무려 20골을 내준 뒤 쓸쓸히 귀국길에 올랐다.

이후 한국은 1968년 멕시코, 1972년 뮌헨, 1976년 몬트리올, 1980년 모스크바,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까지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마침내 1988년 서울올림픽에 주최국 자격으로 40년만에 본선 무대에 올랐다.

한국은 당시 본선에서 소련, 미국과 두 경기 연속 0-0 무승부를 기록해 8강 진출을 눈앞에 뒀지만 아르헨티나에 1-2로 패해 조별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한국은 1988년 서울 대회 이후 이번 런던 대회까지 7회 연속 본선 무대에 오르며 서서히 4강 진출의 꿈을 다지기 시작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본선에서는 모로코(1-1), 파라과이(0-0), 스웨덴(1-1)과 모두 비겨 무패 행진을 벌였지만 아깝게 8강 티켓을 따지 못했다.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는 가나를 1-0으로 눌러 8강 진출이 유력했지만 2, 3차전에서 멕시코와 비기고 이탈리아에 지면서 좌절하고 말았다.

허정무 감독이 나선 2000년 대회에선 스페인과 1차전에서 0-3으로 패한 뒤 2, 3차전에서 모로코, 칠레를 각각 1-0으로 격파했지만 골득실에서 밀려 본선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인 2승1패를 기록하고도 8강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이 첫 8강 진출에 성공한 것은 2004년 베이징 대회다.

김호곤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대표팀은 예선 6전 전승으로 본선에 오르더니 조별리그에서 홈팀 그리스와 2-2로 비기고 멕시코를 1-0으로 꺾은 뒤 말리와 3-3으로 비겼다.

조별리그에서 1승2무를 거둔 한국은 1948년 런던 대회 이후 무려 56년 만에 8강 진출에 성공하는 기쁨을 맛봤지만 4강 문턱에서 파라과이에 2-3으로 분패해 첫 메달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은 박성화 감독이 이끈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본선에서 1승1무1패로 8강에 오르지 못했다.

마침내 한국 축구의 염원이었던 ‘4강 진출’은 7회 연속 본선에 오른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홍명보호(號)’에 의해 완성됐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1차전 상대인 멕시코와 득점 없이 비겨 아쉬움을 남겼지만 2차전에서 스위스를 2-1로 꺾고 8강 진출의 토대를 마련했다.

대표팀은 가봉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무승부(0-0)를 거둬 8년 만에 8강 재진입에 성공하더니 8강 상대인 ‘개최국’ 영국을 승부차기 끝에 무너뜨리고 마침내 한국 축구의 염원이었던 4강 진출의 기쁨을 만끽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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