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신동빈 회장이 경영해 온 한국 롯데는 물론, 최근 ‘원 롯데 원 리더’를 표방한 일본 롯데에서도 ‘신동빈 체제’가 공고히 자리잡으려면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지지한다고 밝힌 신격호 총괄회장이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잃었다는 점이 부각돼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72)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은 4일 도쿄(東京)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 언론과 회견에서 “(신격호 총괄회장이) 같은 질문을 다시 한다든지 내가 일본 담당인데 한국 담당으로 헷갈리셨다”며 그의 건강과 판단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달 27일 변호사만 동석한 상황에서 신 총괄회장과 면담했다는 그는 “대화 때 (신 총괄회장이) 굉장히 침착하셨고 아주 문제없게 대화를 나눴지만 도중에 ‘어’하고 생각되는 국면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런 발언은 신 총괄회장이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한국 롯데그룹 측의 주장이 반론에 부딪힌 상황에서 등장한 일종의 ‘지원사격’으로 보인다.
쓰쿠다 사장은 일본에서 ‘신동빈 체제’ 구축을 주도한 선봉장 격 인사로 알려졌다.
앞서 한국 롯데그룹은 지난달 28일 신 총괄회장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그를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에서 퇴진시키고 명예회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 총괄회장이 전날 일본으로 건너가 본인을 제외한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한다고 구두로 발표한 직후 자신이 해임한 쓰쿠다 사장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며 건강이상설을 제기했다.
이후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롯데홀딩스 이사진 해임은 신 총괄회장이 정상적으로 판단해 한 행동이라고 주장하자, 지난달 30일 한국 롯데그룹은 정식으로 신 총괄회장의 판단능력 문제를 입에 올렸다.
당시 롯데그룹은 입장 자료를 통해 “신 전 부회장과 일부 친족들이 고령으로 거동과 판단이 어려우신 총괄회장을 임의로 동행시켜 구두로 해임발표를 유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신 총괄회장이 이달 중순 한국 롯데그룹 임원진 3명을 해임하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도 롯데그룹은 이런 행동이 신 총괄회장의 판단능력 이상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이 심신이 쇠약해진 틈을 타 측근들이 일본과 한국에서 전방위적으로 (핵심 임원의) 해임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육성 녹음 파일과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이런 주장은 벽에 부딪혔다.
신격호 총괄회장 스스로 신동빈 회장을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해임시켰다는 발언을 했기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이 ‘신동빈 체제’를 굳건히 하기 위한 방편으로 신격호 총괄회장의 판단능력에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판단능력에 이상이 있다면 신동주 전 부회장에 대한 그의 지지는 논리적 힘을 잃게 되고, 신 총괄회장의 우호세력으로 평가받던 롯데홀딩스 종업원 지주회 등 주주들도 신동빈 회장 쪽으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사태가 세간에 알려지기 바로 전날까지 신 총괄회장이 건강하다고 강조해왔던 롯데그룹 측이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자마자 줄기차게 그의 건강이상설을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이번 사안이 불거지기 전날까지도 신 총괄회장이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을 둘러보며 현장 관계자들에게 의견을 전달했다고 홍보했다.
게다가 롯데그룹 측의 주장대로 신격호 총괄회장이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과연 신동주 전 부회장을 해임하고 신동빈 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로 임명한 7개월 전의 결정 또한 정상적 의사결정이 아닐 수 있다는 해석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창업주에 예의의 표시로 (총괄회장이) 건강하다고 얘기해왔지만 고령이기 때문에 장시간 보고를 받는 일 등은 힘들어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단순히 보고만 받는 것도 그런데, 중요한 의사결정이야 오죽하겠느냐”고 주장했다.
3일 귀국한 신 롯데그룹 회장도 아버지의 판단능력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해선 제가 좀 대답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