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헌재… 절차적 공정성 논란으로 신뢰 위기 초래” [최광숙의 Inside]

“기로에 선 헌재… 절차적 공정성 논란으로 신뢰 위기 초래” [최광숙의 Inside]

최광숙 기자
최광숙 기자
입력 2025-03-10 00:49
수정 2025-03-10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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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 권위자’ 양건 前 감사원장

수명 다한 87년 체제
잦은 여소야대는 5년 단임 폐해
대통령·국회 대립하고 국정 정체
대선·총선 같이 치르면 문제 해결
중간평가는 지방선거로 대체해야
헌재 왜 공격받나
선관위 감사 위헌 결정은 편향적
청렴의무 등 신뢰성 고려했어야
대통령 탄핵심판 신속성만 중시
헌재가 ‘신뢰의 위기’ 자초한 꼴
헌법해석 정치적 논쟁
재판관, 법률학자로 확대 필요
독일, 특정 성향 강하면 임명 불가
정치인이 헌법·헌재 정치 도구화
헌재의 논거, 설득력·공감 얻어야
목소리 커진 개헌론
내각제는 타협의 정치서만 작동
대통령제보다 더 큰 부작용 우려
한국은 극도의 적대적 정치 문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불가피
헌법과 헌법재판소가 요즘같이 국민적 관심사가 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계엄·탄핵 국면을 맞아 개헌 논의가 분출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헌재의 신뢰성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헌재는 출범 이후 가장 강력한 정치적 위력을 떨치고 있는 현실과는 정반대로 위기에 처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혼란상을 헌법 정신으로 볼 때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해야 할까. 헌법학 권위자인 양건 전 감사원장은 지난 5일 서울신문과 만나 “헌재가 이번 탄핵심판에서 절차의 공정성과 결정의 설득력을 보여 주지 못하면 추후 결정이 어떤 식으로 나든 후폭풍이 우려된다”고 했다. 헌재 결정이 설득력을 보여 주지 못한 사례로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위헌으로 결정한 것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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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은평뉴타운 자택 인근 카페에서 만난 양건 전 감사원장은 “대통령 탄핵 관련 찬반 여론이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상황에서 탄핵심판의 절차적 공정성을 소홀히 하면 헌재 결정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빌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준석 전문기자
지난 5일 서울 은평뉴타운 자택 인근 카페에서 만난 양건 전 감사원장은 “대통령 탄핵 관련 찬반 여론이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상황에서 탄핵심판의 절차적 공정성을 소홀히 하면 헌재 결정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빌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준석 전문기자


-헌법학자로서 계엄과 탄핵 사태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87년 헌정 이래 성공한 대통령은 없었다. 누적된 적대 정치 폐해의 민낯이 이번에 드러났다.”

●87 체제 키워드는 5년 단임제·헌재 신설

-이런 사태의 근본 원인이 ‘87년 체제’라는 주장이 많다.

“87년 체제의 키워드는 ‘대통령 5년 단임제’와 ‘헌법재판소 신설’이다. 12·3사태는 이 둘과 모두 관련돼 있다. 5년 단임제로 의원 임기와의 불일치 때문에 여소야대 상황이 빈발하면서 대통령과 국회가 대립하고 이로 인한 국정 정체 현상이 벌어졌다. 또 정치권력의 갈등과 자체적 해결 능력이 떨어지면서 정치적 분쟁이 헌재로 이전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심화됐다. 이 현상은 다시 ‘사법의 정치·정략화’ 현상을 초래했다.”

-탄핵 찬반 여론이 극단으로 대립하고 있다.

“헌재 결정이 어떻게 나오든 후폭풍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헌재의 권위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헌재 재판관의 신뢰성과 재판 절차의 공정성, 결정의 설득력이 관건이다. 하지만 요즘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을 보면 재판의 신속성만 일방적으로 중시하고 절차적 공정성은 소홀히 하는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보다 지금이 더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여론이 둘로 더 확연히 갈라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 절차가 문제가 되면 ‘절차의 문제’가 ‘결정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헌재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절차의 중요성이 중요한 이유다. 미국 법심리학자인 톰 타일러의 경험적 연구 결과 법 집행당국 결정의 정당성을 좌우하는 것은 재판 결과보다 절차적 공정성이 얼마나 보장되는가가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례 없이 헌재를 공격하는 이들도 있다. 헌재의 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는 재판 절차의 공정성에 대해 더 신경을 써야 하는데, 그런 고려가 부족해 보인다.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면 헌재의 결정 이후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금 헌재는 신뢰와 불신의 기로에 서 있다.”

-헌재 결정의 설득력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최근 헌재는 감사원의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과 관련, 감사원은 그런 권한이 없으니 위헌이라고 했다. 이 결정은 설득력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 결정 이유가 편향되고 빈약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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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 권위자인 양건 전 감사원장은 “87년 헌법 체제의 키워드는 대통령 5년 단임제와 헌법재판소 신설”이라며 “12·3사태는 이 둘과 모두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2018년 펴낸 저서 ‘헌법의 이름으로’에서 5년 단임제의 폐해와 정치적 위상이 강화된 헌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도준석 전문기자
헌법학 권위자인 양건 전 감사원장은 “87년 헌법 체제의 키워드는 대통령 5년 단임제와 헌법재판소 신설”이라며 “12·3사태는 이 둘과 모두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2018년 펴낸 저서 ‘헌법의 이름으로’에서 5년 단임제의 폐해와 정치적 위상이 강화된 헌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도준석 전문기자


●‘선관위 감사 위헌’ 결정, 설득력 떨어져

-헌재의 논거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중요 쟁점은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 제외 기관을 국회, 법원, 헌재 세 기관으로 규정(감사원법 24조 3항)한 부분이다. 헌재는 이를 ‘열거’ 규정이 아니라 ‘예시’ 규정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선관위도 직무감찰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그럼 그것이 예시 규정이라는 근거를 대야 하는데, 예시가 아니라 열거라고 볼 수 있는 감사원법 개정 당시의 국회심의 과정, 이른바 입법사를 무시했다. 핵심 쟁점에 대한 결정 논거가 빈약하고 편향적이다.”

-감사원의 선관위 감사 문제가 이전에도 논란이 있었다는 건데, 당시 결론은.

“1995년 감사원법 개정 당시 이시윤 감사원장은 선관위의 사무 성격은 본질적으로 행정작용이기 때문에 직무감찰 제외 대상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후 선관위를 직무감찰 제외 대상에 포함시키려는 개정안 시도가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예시’가 아니라 ‘열거’라는 유력한 근거인데도 헌재는 이런 입법 과정을 도외시했다. 편향적 결정이다.”

-선관위에 관한 헌재의 결정이 편향적이라고 했는데.

“헌재는 감사원이 대통령 소속 기관이라는 점과 선관위의 독립성만 강조했다. 선관위의 독립성도 중요하지만 선거관리가 온전하려면 청렴 의무 등 넓은 의미의 신뢰가 필요한데, 이런 고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 기관이어서 독립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논리만 내세웠다. 감사원법에 규정된 감사원의 ‘직무 독립성’을 무시한 것도 편향됐다.”

-헌재는 이번 결정이 헌법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법 규정은 명확하지 않다. 직무감찰 대상에 관해 ‘행정기관 및 공무원’이라고만 규정할 뿐이다. 구체적인 법률 규정은 소흘히 하는 반면 불명확한 헌법 조항만 내세우는 것은 헌재 결정의 논거, 설득력 부족을 자인하는 셈이다. 이런 편향적 결정이 재판관 전원일치라는 점도 놀랍다. 재판관 전원일치 판결을 헌재의 기관전략적인 방편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헌재 결정, 관련 법익 두루 살펴야

-헌법 해석을 놓고 정치적 논쟁이 잦아졌다.

“헌법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헌법제정이든 헌법재판이든 헌법의 영역에서 정치성은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헌법의 이름’으로 치장된 논거가 얼마나 설득력을 지니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은 폭넓게 관련된 법익을 두루 살피고 균형적으로 봐야 한다.”

-일부 헌재 재판관의 정치 성향에 대한 논란도 있다.

“헌법재판의 특수성을 감안해 재판관들이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법관 자격에 제한을 둘 것이 아니라 외국 사례처럼 법조인 외에 법률학자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독일은 재판관 전원을 의회에서 선출하되 3분의2 찬성을 받도록 규정, 특정 정치 성향이 강하면 재판관이 되기 어렵게 했다.”

-헌재는 여론도 의식하는 것 같다.

“헌재의 결정은 국민 의사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이때 국민 의사는 그때그때 부침하는 여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국민 의사는 ‘헌법 속에 내재한 국민 의사’이다. 헌재는 진정한 국민 의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종국적으로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정치권에서 헌법, 헌재 운운하는 일이 많아졌다.

“정치인들이 헌법을 존중해서 그런 게 아니다. 이들은 헌법과 헌법재판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이 역시 적대 정치의 산물이다. 뿌리 깊은 이념적 갈등이 적대 정치를 불러왔고 사회적 양극화를 매개로 전 사회가 적대 사회화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개헌의 목소리가 커졌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는데 권력구조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운영’에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대통령제의 실패라기보다 ‘5년 단임제’의 부작용이 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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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 전 감사원장은 “우리 실정에 맞는 권력구조를 찾기 위해 대안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타협이 안되는 적대적 정치문화이기 때문에 의회 중심의 내각제 등은 대통령제보다 더 부작용이 클수 있다는 것이 양 전 원장의 판단이다.
양건 전 감사원장은 “우리 실정에 맞는 권력구조를 찾기 위해 대안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타협이 안되는 적대적 정치문화이기 때문에 의회 중심의 내각제 등은 대통령제보다 더 부작용이 클수 있다는 것이 양 전 원장의 판단이다.


●내각제는 대통령제보다 부작용 더 커

-5년 단임제의 폐해는.

“가장 큰 병폐는 1987년 헌법 시행 이래 여소야대 현상을 빈발시켰다는 점이다. 일부 대통령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탄식한 것도 여소야대 정치 지형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 중 총선이 치러지다 보니 중간평가 성격을 갖게 되고, 총선은 집권당 비판 여론이 강세를 이루다 보니 여소야대가 통례가 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선과 총선을 같이 치르고 중간평가는 지방선거로 대체하면 된다.”

-요즘 이런 사태를 겪고도 또 대통령제를 하냐는 주장도 있다.

“거론되는 의원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는 의회 중심 제도다. 국정이 의회 중심으로 돌아가면 우리 현실에서 대통령제의 혼란보다 더 극심한 부작용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바람직한 권력구조 방향은.

“우리 실정에 맞는 권력구조를 찾기 위해 대안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먼저 봐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어떻게 작동될지는 이를 운영하는 정치문화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타협, 절제를 모르는 극도의 적대적인 정치 문화이다.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는 타협의 정치 위에서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4년 중임제가 불가피해 보인다.”

-개헌으로 한국 사회가 바뀔까.

“가장 큰 문제인 적대 정치가 개헌으로 쉽게 해결되기는 어렵지만 그 폐해가 다소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심각한 통증을 완화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양건 전 감사원장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한양대 등에서 35년간 법학 교수로 헌법과 법사회학을 강의한 헌법의 권위자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초대 국민권익위원장을 맡아 ‘공익신고자보호법’ 제정을 추진했고 2013년 제22대 감사원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후 평생 연구 과제인 헌법학·법철학·법사회학 저술에 몰두해 왔다. 온화해 보이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단 있는 성품이다. 저서로는 ‘법사회학’, ‘헌법 강의’, ‘법 앞에 불평등한가? 왜?’ 등이 있다. 87년 헌법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담은 ‘헌법의 이름으로’(2018년)에서는 일찌감치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부작용과 헌재의 문제점에 대해 정확히 진단했다.

최광숙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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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1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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